현대 철학의 거물 비트겐슈타인은 그의 책 <철학적 탐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자가 말을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다." 삶의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주어진 환경과 개인의 경험이 다르다면, 우리는 같은 말을 한다 해도 서로를 조금도 이해할 수 없다. 21세기 한국의 건물 숲속에서도 우리는 사자들을 만난다.
- 채사장의《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중에서 -
* 우리는 서로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있음에도 사자와 인간만큼이나 대화가 통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삶의 형태에 따라 같은 단어를 사용하더라도 그 속에 담는 뜻이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삶의 형태가 다양해지는 요즘은 그 차이가 더욱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그 사람이 하는 말을 넘어서 그 사람의 우주를 보아야 할 때입니다. 상대의 역사와 공간을 들어야 합니다. 언어에 숨어있는 우주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만 비로소 그 사람이 보입니다.
파이썬은 비영리의파이썬 소프트웨어 재단이 관리하는 개방형, 공동체 기반 개발 모델을 가지고 있다.
파이썬은 초보자부터 전문가까지 사용자층을 보유하고 있다.동적 타이핑(dynamic typing)범용 프로그래밍 언어로,펄및루비와 자주 비교된다. 다양한 플랫폼에서 쓸 수 있고, 라이브러리(모듈)가 풍부하여,대학을 비롯한 여러 교육 기관, 연구 기관 및 산업계에서 이용이 증가하고 있다. 또 파이썬은 순수한 프로그램 언어로서의 기능 외에도 다른 언어로 쓰인 모듈들을 연결하는접착제 언어로써 자주 이용된다. 실제 파이썬은 많은 상용 응용 프로그램에서스크립트 언어로 채용되고 있다. 도움말 문서도 정리가 잘 되어 있으며,유니코드문자열을 지원해서 다양한 언어의 문자 처리에도 능하다.
현대의 파이썬은 여전히 인터프리터 언어처럼 동작하나 사용자가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 파이썬 소스 코드를 컴파일하여 바이트 코드(Byte code)를 만들어 냄으로써 다음에 수행할 때에는 빠른 속도를 보여 준다.
파이썬에서는들여쓰기를 사용해서 블록을 구분하는 독특한 문법을 채용하고 있다. 이 문법은 파이썬에 익숙한 사용자나 기존 프로그래밍 언어에서 들여쓰기의 중요성을 높이 평가하는 사용자에게는 잘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다른 언어의 사용자에게서는 프로그래머의 코딩 스타일을 제한한다는 비판도 많다. 이 밖에도 실행 시간에서뿐 아니라 네이티브 이진 파일을 만들어 주는C/C++등의 언어에 비해 수행 속도가 느리다는 단점이 있다. 그러나 사업 분야 등 일반적인 컴퓨터 응용 환경에서는 속도가 그리 중요하지 않고, 빠른 속도를 요하는 프로그램의 경우에도 프로토타이핑한 뒤 빠른 속도가 필요한 부분만 골라서 C 언어 등으로 모듈화할 수 있다(ctypes,SWIG,SIP등의 래퍼 생성 프로그램들이 많이 있다). 또한Pyrex,Psyco,NumPy등을 이용하면 수치를 빠르게 연산할 수 있기 때문에 과학, 공학 분야에서도 많이 이용되고 있다. 점차적인 중요성의 강조로 대한민국에서도 점차 그 활용도가 커지고 있다.
파이썬 2.0은 2000년 10월 16일 출시되었으며메모리 관리를 위한 사이클 감지쓰레기 수집기(참조 카운팅뿐 아니라),유니코드지원을 포함한 새롭고 수많은 주요 기능들이 포함되었다. 그러나 가장 중대한 변화는 개발 프로세스 그 자체로서, 더 투명하고 공동체의 지원을 받는 프로세스로의 전환이다.[4]
파이썬 3.0은 메이저급의 하위 호환성이 없는 릴리스로서 2008년 12월 3일 출시되었으며[5]이는 수많은 테스트 기간을 거친 뒤에 개발되었다. 주요 기능들 중 다수가 하위 호환이 가능한 파이썬 2.6, 2.7로백포팅되고 있다.[6]
감동이다. 고맙다. 사랑한다. 행복하다. 평화롭다. 지금, 이 순간 내 느낌의 언어는 무엇인가?
- 서해원의 시집 《나를 찾아 나서는 길》 에 실린 시 〈행복의 언어〉 전문 -
* '행복의 언어'는 더 있습니다. 부사와 형용사 몇 음절을 덧붙이면 뜻이 배가 됩니다. '너무 좋다', '뛸 듯이 기쁘다', '설레서 잠을 설쳤다', '벅찬 감동이다', '고마워 눈물이 난다' 등등. 행복의 언어를 입술에 달고 살면 덩달아 인생도 행복해집니다. 언어가 곧 삶입니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의 사랑을 증명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무엇인가? 말로 설명하지 않고서는 이해되지 않는 사랑이라면 그런 사랑은 아무 가치가 없다. 사랑은 말할 필요가 없다. 진실로 사랑한다면 그대의 존재 전체가 말할 것이다. 언어는 전혀 필요 없다.
- 오쇼 라즈니쉬의《장자, 도를 말하다》중에서 -
* 세상이 온통, 말의 홍수로 넘쳐나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휩쓸리지 않고 맑게 깨어 있으려면 나의 귀를 닫고, 입을 닫는 시간을 매일 만들어내야 합니다. 그래야 고요한 침묵이 가능해집니다. 말은 머리의 언어이고 침묵은 가슴의 언어이니까요.
"미리 예약했습니다"나 "박수를 칩니다"가 겹말인 줄 느낄 수 있을까요? "축구를 차다"나 "탁구를 치다"나 "테니스를 치다"가 겹말인 줄 알아차릴 수 있을까요? "붉게 충혈된 눈"이나 "들뜨고 흥분했네"가 겹말인 줄 생각할 수 있을까요? 요즈음 "역전 앞" 같은 말을 쓰는 분은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런 겹말은 워낙 널리 이야기가 된 터라 퍽 쉽게 바로잡기도 하고 사람들 스스로 털어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무척 많은 겹말은 겹말인 줄 못 느끼면서 쓰입니다.
- 최종규, 숲노래의《겹말 꾸러미 사전》중에서 -
* '겹말'이란 같은 뜻의 낱말을 겹쳐서 쓰는 것을 말합니다. '초가집', '처갓집', '외갓집', '향내', '늘상', '한밤중'이 대표적인 겹말입니다. 우리 한국말이 한자말과 연결돼 있기 때문에 생긴 불가피한 현상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더욱 우리말을 우리말답게 지켜내야 하는 책무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언어는 영혼의 무늬입니다. 언어가 뒤섞이고 혼탁해지면 우리의 영혼도 함께 혼탁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