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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스개 이야기지만 ‘삼천포’를 ‘쥐포’의 변형 음식 정도로 아는 사람도 있다. 이는 ‘삼천포’에 대한 심한 모독이다. ‘삼천포’는 경상남도 남서쪽 끝자락에 자리한 아름다운 항구 도시이기 때문이다. 기후가 온화하고 해안 경치가 빼어날 뿐만 아니라 먹을거리가 풍부해 그 어느 지역보다 살기 좋은 고장이다.

‘삼천포’는 진주(晋州) 바로 아래에 있어 서울이나 부산에서 이곳으로 오려면 진주를 거치게 된다. 그런데 ‘삼천포’는 1995년 5월 행정구역 개편 때 사천군(泗川郡)과 합쳐져 ‘사천시’로 바뀌면서 그 이름이 사라졌다. 그래서 행정 명칭상 ‘삼천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삼천포’라는 지명은 ‘삼천포로 빠지다’는 독특한 표현 속에 여전히 살아 있다. 이 말이 사라지지 않는 한 ‘삼천포’라는 지명은 아무리 행정 명칭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입에서 입으로 오랫동안 전해질 것이다.

‘삼천포’는 한자로 ‘三千浦’이다. 이 도시가 포구에 형성되어 있기에 ‘浦’ 자가 들어가는 것은 당연하게 보이지만, ‘三千’이 어떤 이유에서 붙게 된 것인지는 잘 알 수 없다. 어떤 사람은 ‘三千’을 ‘온갖 것’을 뜻하는 불교 용어로 보고 이를 이상향의 상징으로 설명한다. 이에 따라 ‘三千浦’를 수없이 많은 개〔浦〕가 있는 이상적인 항구로 해석한다.

그런데 이처럼 깊은 뜻이 담긴 ‘삼천포(三千浦)’에 느닷없이 ‘빠지다’가 붙어 ‘삼천포’라는 지명의 이미지에 큰 손상을 주게 되었다. “잘 나가다 삼천포로 빠졌다”는 표현에서 보듯 어떤 목적지를 가려다 의도하지 않았던 삼천포로 잘못 들어섰다는 뜻을 담고 있으니 이는 ‘삼천포’ 사람들에게 별로 유쾌한 표현은 아니다.

‘삼천포로 빠지다’는 표현이 언제부터 쓰였는지 이 지역 사람들조차 잘 알지 못한다. 그 유래 또한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삼천포 사람들이 만들어 쓴 것이 아니므로 이 지역 사람들이 그와 같은 표현이 쓰인 시기나 유래를 알지 못하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얼마 전 이 지역 공무원들이 조사한 바로는 이 표현에 대한 유래설이 예닐곱 가지가 된다고 하니 놀랍기 그지없다. 그 몇 가지 유래설을 소개해 본다.

(1) 옛날 어떤 장사꾼이 장사가 잘되는 진주로 가려다가 길을 잘못 들어서 장사가 안 되는 삼천포로 가는 바람에 낭패를 봤다.

(2) 부산발 진주행 열차는 개양역에서 삼천포행의 객차를 분리하여 운행했다. 이때는 반드시 안내 방송을 통해 진주행 손님과 삼천포행 손님이 각각 몇 호 차로 갈아탈 것을 알렸다. 그런데 진주로 가는 손님이 술을 과하게 마시고 졸다가 엉뚱하게 삼천포행 객차로 옮겨 타게 되어 진주가 아닌 삼천포로 잘못 가게 되는 일이 종종 있었다.

(3) 부산발 순천행 열차는 진주에서 분리하여 삼천포로도 운행을 하였다. 순천으로 가는 손님이 객차를 분리할 때 삼천포행 객차로 잘못 옮겨 타 삼천포까지 가게 되었다.

(4) 진주에서 고성을 가다 보면 사천을 조금 지나 3번 국도와 겹쳐지는 삼거리가 나온다. 고성을 가려면 왼쪽 길로 들어서야 하는데 자칫 직진 코스인 3번 국도를 탈 수가 있다. 3번 국도를 타고 내려가면 그 종점인 삼천포에 닿는다.

(5) 진주로 가는 길과 삼천포로 가는 길이 갈려 있었다. 진주로 가려던 사람이 삼천포로 향하는 길로 잘못 접어들어 결국 삼천포까지 가게 되었다.

(6) 진해에 근무하던 해군 병사가 서울에서 휴가를 보내다가 기차로 귀대하고 있었다. 진해로 가려면 삼랑진에서 열차를 갈아타야 하는데, 잘못해서 삼천포로 가는 기차를 갈아타게 되었다. 그 병사는 귀대 시간을 훨씬 넘겨 도착하여 기합을 받았다.

이들 유래설을 종합해 보면 열차나 자동차를 타고 ‘진주’나 ‘고성, 순천, 진해’ 등으로 가다가 열차를 잘못 갈아타거나 길을 잘못 들어서 엉뚱한 장소인 ‘삼천포’에 도착했다는 것이다. 그 본래의 목적지로 ‘진주’와 ‘고성, 순천, 진해’ 등이 거론되지만 ‘진주’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 ‘진주’는 아래로 ‘삼천포’와 직접 연계되는 도시이자 ‘삼천포’보다 큰 도시이기 때문이다. ‘진주’로 가려다가 길을 잘못 들어 진주 밑에 있는 삼천포까지 가게 되었다는 것이 이 표현의 핵심 요지가 아닐까 추측된다. 여기에 자동차를 탔건 기차를 탔건 그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삼천포로 빠지다’는 표현은 ‘길을 잘못 들다’라는 의미뿐만 아니라 ‘이야기가 곁길로 빠지다’, ‘어떤 일을 하는 도중에 엉뚱하게 다른 일을 하다’ 등과 같은 부정적인 의미로도 쓰인다. 그러니 삼천포 주민들이 ‘삼천포’가 들어가는 이 표현을 좋아할 리가 없다. 공식석상에서 이 표현을 썼다가 정식 사과하는 일까지 생기는 것을 보면, 삼천포 주민들이 이 표현을 얼마나 싫어하는지를 알 수 있다. 지역 감정을 유발하는 이 표현보다 이왕이면 “잘 나가다 샛길로 빠지다”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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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아이디어는
가끔 적군이 매설한 지뢰처럼 밟힌다.
생각지도 못한 엉뚱한 곳에서 발원한다.
우리는 누군가와 어떤 주제로 대화를 나누다가
이야기가 곁길로 새는 경험을 한다. 이로 인해
김이 빠지기도 하지만, 뜻밖의 세계가
열리기도 한다."아니, 네? 뭐라고요?"
호기심을 더 품을 수도 있고,
무심하게 넘길 수도 있다.


- 고경태의《굿바이, 편집장》중에서 -


* 이야기를 하다 보면
갑자기 곁길로 샐 때가 있습니다.
여행 중에 잠시 길을 잃을 때가 있습니다.
사업을 하다 부도 위기를 맞을 때가 있습니다.
좋은 관계가 삐끗 틀어질 때도 있습니다. 바로
그때가 기회입니다. 새로운 이야기, 새로운 만남,
새로운 도전이 시작되는 변곡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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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다시피 카네기는
미국의 필란트로피에서 가장 잘 알려진
인물 중 한 명이다. 앤더슨 대령이라는 사람이
어린 소년 카네기에게 자신의 서재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해 준 관대함 덕분에 카네기가 그런 삶을
살 수 있었다. 앤더슨 대령의 관대함은 수십 년
후까지 밖으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이후
'카네기 도서관'을 이용해온 수백만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끼쳤다.

- R. L. 페이턴의《필란트로피란 무엇인가》중에서 -


* 10대 때, 시립도서관은
소풍 장소이자 안식처였고 저를 품어주고
숨겨주는 안락한 동굴과도 같았습니다. 그 속에
수많은 사람들과 세계 곳곳, 역사의 숨결이 저의
불안과 걱정을 달래주고 세상과 연결해 주는 다리가
되어 주었습니다. 그때는 몰랐던 '공공의' 역할,
지금도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누군가를
지탱해 주고 있을지 모릅니다.
카네기 도서관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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